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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해몽

위인에 얽힌 태몽 이야기 2.

by 무님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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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경을 딛고 일어선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의 가문은 조부 때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침체기에 들어서 있었다. 어릴 때부터 무인의 자질을 보였지만 이순신은 꾸준히 문과 응시를 준비했는데 혼인 뒤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라겨고 한 것은 침체된 가문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31세에 병과에 급제한 후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의 강직한 성품은 조종 그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지만 이순신의 바른 성정이 위대한 업적 외에도 귀감으로 꼽히곤 한다.

 

이순신 장군의 태몽은 어머니 변씨의 꿈에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나타나 태어날 아들은 나라를 구할 큰 인물이 될 것이니 이름을 "순"이라 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정은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돌림자 '신'을 붙여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이순시'이라 지었다.

할아버지의 예언처럼 이순신 장군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노량 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자신의 죽음을 숨기 채 끝까지 전투를 독려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성리학의 창시자이자 고려의 충신 정몽주

 

정몽주가 성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는 학문의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리학을 확립하고 학당과 향교를 세운 그의 진취적인 행로 때문이기도 하다. 스승 이색은 정몽주에 대해 "학문에서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가장 뛰어났으며 그의 논설은 어떤 말이든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그를 평했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자개을 보내 선죽교에서 피살한 것은 정모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고 정몽주가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것은 반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몽주는 어머니 이씨가 결혼한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태기가 없던 중에 꿈에 노인 한 분이 난초화분을 주어 받아들었다. 부인은 노인의 얼굴이 궁금하여 바삐 쫓다가 화분을 깨뜨려 깜짝 놀라 깨어났는데 후에 태기가 생겨 낳은 아기가 정몽주였다. 때문에 어렸을 때는 몽란으로 불리다가 그의 아홈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꿈에 검은 용이 동산 가운데 있는 배나무에 올라가는데 나무 위에 몽랑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몽룡으로 고쳤다가 성년이 지난 후에 몽주로 다시 고쳤다. 이것은 부친이 꿈에서 훌륭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는데 스스로를 중국의 주공(주나라 문왕의 아들)이라 말하며 "천제의 명으로 너희 집에 태어나기로 했다."는 태몽을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태몽은 사람이 표상으로 등장하는 경우 체격이나 성푸, 학식이나 인생의 운명 등이 유사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건

 

 

 

 

 

3. 한글을 창시한 왕 세종대왕

 

태종은 첫째 아들 양년대군을 폐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천성이 총며하고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법도 잘 알아서 윗사람들에게 의경을 아뢰는 것이 진실로 함당하다,'며 왕세자로 삼는 이유를 밝혔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여 태종이 병이 날까 두려워 항상 밤에 글 읽기를 금하였을 정도였다. 무수한 세종의 업적은 이러한 그의 학구열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외에도 과학과 농업 기술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기틀을 확립했다. 또한 백성을 사랑한 어진 왕이었으니 세종의 위대함은 이러한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의 태몽은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왕비가 되기 전인 정녕옹주 시절 꾼 꿈으로 한양 북악산 위에 튼 황소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나타났는데 뿔 사이에 빛나는 붉은 해가 굴러 떨어지니그 기세가 궁궐과 마을을 모두 태워버릴 듯하였다. 

이때 어디선가 붉은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그 해를 삼키더니 정녕온주의 품에 안겼다. 이 태몽을 꾼 후 원경왕후는 세종을 낳았다. 

꿈의 동자와 태양은 각각으로도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길한 꿈인데 이처럼 태양을 삼킨 동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인물이 될 아이를 예시한 꿈이라 할 수 있겠다.

 

 

 

4.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이성계는 중앙 귀족 세력이 아닌 변방 출신으로 공민왕의 반원 정잭에 의해 아버지 이자춘을 도와 원나라의 세력을 몰아내면서 지방의 실력자로 급부상하였다. 이성계는 탄탄한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인맥과 제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뿐 아니라 무예도 뛰어났다. 그러나 중앙 정치에서의 성장은 한계점에 다다라 있었는데 항상 최영의 이인자로 남아야 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이미 왕명을 거역한 반역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요동정벌을 위해 얻은 대군으로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1392년 마침내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계속되는 아들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으로 인생을 무상함을 느끼고 일선에서 물러나 74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별세했다.

 

그의 태몽은 한 신선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소매 속에서 황금으로 만든 자를 꺼내 주면서 "이 물건은 옥황상제께서 그대의 집에 보내시는 것이니 잘 보관하였다가 동국지방을 측량케 하라."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성계의 태몽은 계시적인 꿈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자'는 헤아리고 측량하는 뜻에서 법도, 규약 등 장차 국정을 운영하게 될 것임을 뜻하고 있다. 이 꿈은 이성게가 장자 나라를 다스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임을 예지한 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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