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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섯의 일기

어느 아줌마의 마흔 다섯의 일기 8

by 무님 20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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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을 살고서도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다시 사춘기가 찾아왔나 봅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쓸쓸하고 그리고 아직도 삶에 목표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십 대에 세상은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 같았고 이십 대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갔고 삼십 대에는 아이들에 치여 나를 잊었고 사십이 되고 나니 나는 없습니다. 그런 날들의 기록을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마흔여섯의 십일월 십이일 하루 종일 집이다. 두 아이는 모두 학교에 가고 아무도 없는 집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청소도 하고 글도 쓰고 핸드폰도 보고 그 사이 잠깐잠깐 창 밖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어젯밤 차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큰 아이와 싸웠다. 야단이 아니라 싸웠다. 스무 살이 된 큰 아이는 이제 나 보다 자기가 더 어른이다.

그런 줄 아나 보다. 그럼 더 어른인 내가 참아야 하는데 그건 또 힘이 든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그 아이와 나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자꾸 차오르는 화는 주체가 안 되고 나는 병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보다. 마음이 많이도 아프다. 너무 아프다. 몸이 아픈 건 참아 보겠는데 자꾸 아픈 마음을 들쑤시는 큰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다.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평소에는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 두었다. 집안이 조용하니 자꾸 다른 생각이 넘어왔다. 이런 날은 온통 시끄러운 것들로 채워두면 눈과 머리가 바빠진다. 그래야 내가 쉼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늦은 밥 가족들이 모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자야겠다. 나의 일을 다 끝냈으니 나는 그냥 자면 된다. 나의 일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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