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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섯의 일기

< 나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 그런 기분이 들었다 4.

by 무님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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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그런 줄 알았다. 젊을 땐 그랬다. 남들보다 없는 것에 별 신경을 쓰고 살아본 적이 없다. 부끄럽고 아니고를 생각할 필요도 못 느꼈다.

그러나 마흔의 중반에 서고 보니 <가난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거였다.> 나는 잘 살아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도 가난했고 20대 직장을 다니면서도 용돈 30만 원 받으며 월급은 다 엄마손으로 들어갔다. 용돈 30만 원에는 차비며 기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돈이었지만 그래도 쓸 일도 별로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에게 월급으로 120을 주고 아이 양육비에 철마다 엄마의 보약값을 써야 했다. 그래도 신랑이 벌어 주는 돈으로 많이 모으지는 못해도 사는 일에 부족하진 않았다.

자영업을 하는 신랑이 부도를 맞을 때에도 내가 직장을 다니니 괜찮다며 크게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랬다. 돈을 모으지 못해서 그렇지 아이들이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게 살면 괜찮았다.

그런 나였지만 마흔에 중반에서 많은 서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상가도 나가보고 부동산도 가 봐야 했다. 바쁜 하루에 시작이지만 기운이 나질 않았다. 10시를 조금 넘어 상가 정리도 하고 부동산에 앉았다. 부동산에 계신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이사할 집도 알아본다고 했다.

이 부동산은 광명에 이사 올 때 집을 구했던 곳이기도 하고 내가 상가 단지에서 작은 상가를 얻을 때도 이곳에서 했다. 그래서 나름 잘 알고 있는 곳이라 집값 오른 사정도 알고 많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아주머니께 마땅한 집이 있냐고 물으니 2억씩은 올라서 지금 돈으로는 어렵고 평수를 줄여서 가도 지금보다 1억은 더 필요하다고 한다.

혹시 반전세로 나온 물건은 없냐는 소리에 월세로는 나왔지만 반전세는 없단다. 그래도 알아봐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나도 걱정을 말았으면 좋겠다. 근데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너무 신경을 쓰니 뇌가 쪼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고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내가 무서워 음악을 틀었다. 귓속의 멜로디가 어디 멜로디로 들릴까만은 머리가 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사는 일은 늘 힘들구나 '

 

집으로 들어오니 아이의 학원 갈 시간이다.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귀찮다. 귀찮다고 안 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차려 놓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겨우겨우 대답하다가

아이가 학원을 간 뒤에 소파로 가서 누웠다.  나는 잠을 자야겠다. 그래야 살 거 같다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찌 잠이 올까? 노트북을 켜고 다시 부동산을 뒤적였다. 봐도 봐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저녁 7시가 넘어갈 때쯤 다시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니 반전세가 있다. 이거면 대출을 거진 받을 필요가 없던가 아님 몇 천만 더 받으면 될 거 같다. 이자를 계산해 보니 월세와 대출이자를 다해도 다른 전세 물량보다 값이 저렴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반전세에 가까워 월세를 약간 내고 있는 상태니 썩 나쁜 조건이 아닌 물건이다.

저녁 신랑이 들어오고 말해 보았다. 신랑도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다고 한다. 버팀목 대출이 쉽지도 않고 저렴한 이자를 찾아도 3% 때고 그것도 얼마나 한도가 나올지 걱정이었는데 차라리 반전세로 갈아타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단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부동산에 전화도 안 되고 내일 아침 일찍 가보려고 한다. 집에서 얼마 멀지 않아 일찍 움지여야 할 것 같다. 매물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직 아이들에게는 이사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집을 계약하고 할 생각이다. 부모의 걱정은 부모의 몫이다. 그리고 솔직히 아이들은 가난하게 느끼며 살게 하고 싶지 않다. 가난 또한 신랑과 나의 몫으로 하고 싶다.

아이들의 삶에서 부모와 함께 있던 시간만큼이라도 아이들의 삶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로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내일 나는 또 다시 좌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좌절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지 않도록 나는 나를 지켜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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