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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섯의 일기

어느 아줌마의 마흔 다섯의 일기 14

by 무님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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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는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사춘기의 철없음도 지나고, 20대의 무한 열정도 지나고, 30대의 자만도 지나고, 세상을 이해할 만큼 이해하는 나이, 세상 일에 너그러울 만큼 너그러운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은 새로운 나를 제대로 보는 나이였다. 앞만 보고 달려 와서 보지 못 했던 나를 알아가는 나이였다. ' 나 '를 알아가고 나를 이해해 간다는 건 사춘기의 불안만큼 불안하고 외로운 일이다.

 

 

 

 

 

마흔여섯의 십이월 이십육 일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때론 축제 같고 때론 숙제 같은 날이 지났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작은 가족 만찬과 25일이 생일인 작은 아이의 아침 생일상을 차려주고 나면 26일의 아침은 홀가분하다. 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설렘이고 기다림이었지만 어른이 되고 아이의 부모가 된 나의 크리스마스는 늘 숙제다. 그래도 누구에게든 좋은 날이었으면 되었다.

이른 아침 창밖 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려다보니 맞은편 아파트에서 또 이사를 간다. 이번 12월 들어 이사 가는 집이 계속 보인다. 하루에 2집에서 3집이 가는 날도 있다.

우리도 곧 이사를 가야 한다. 이 아침 이사를 가는 집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모습이 꼭 살아온 삶의 전쟁터에서 패하고 떠나는 패잔병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인생의 중반에서 내 것이 없으므로 느껴지는 구차하고 가난한 마음이 들었다. 내 삶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부끄러워야 해야 한다는 조롱을 받는 기분이었다. 참 못나게도 자꾸 어깨를 움츠리려 하고 있다. 나의 삶에 최선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도....

연말을 며칠 남겨두고 마음이 자꾸 일렁인다. 해야 할 숙제를 한 아름 안고 다음 해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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